작가의 메시지

아들이 중학교를 다닐 적 일이다. 내가 꾸러기 짓과 유머를 즐겨하다 보니 가끔 아내로부터 “당신, 언제 철이 들려나.”하는 귀여운 소리를 듣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작은 아들 녀석이 피식대며 끼어들어 “아빠! 철 좀 드세요!”라며 엄마를 거들었다. “철이 향긋한 국화차도 아닌데 들긴 어떻게 들어.”라며 한 점 뭉게구름 띄워놓고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전에 싱글거리며 그 자리를 피해 슬그머니 도망치곤 했다.

‘철’이란 것, 그것은 사리를 판단하는 힘이고 능력이다. 그래서 철든 사람은 언행이나 몸가짐이 의젓하고 점잖아야 하며, 품격이 속되지 아니하고 됨됨이가 품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철’에 대한 의미가 그런 것이라면 철든 사람들은 개그라든지,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영화라든지, 상대를 치고 때리는 격투기나 애정행각의 영화와 소설 따위를 눈살 찌푸리며 즐기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한 점 양심에 거리낌 없이 외면해야만 할 것이다. 철에 대한 정의와 전혀 다른 이중성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자아의 위장이거나 위선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성인聖人과 같은 철의 경지에 이를 수 없는 것인지를 느끼면서도 마치 성인처럼 말들 하고 행동하려 한다. 또한 인간거개는 그것들 자신들이 추구하고 취해야 할 최선의 삶에 대한 지표이고 방향이라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웅혼한 문장으로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천태만상의 서로 다른 생명체로부터 자신을 차별화시켜 최상의 위상을 점하고자 하는 이상理想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단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만물과의 차별 그리고 우위의 점유를 위한 삶, 그것은 태초에 창조주가 세상에 심어준 의도와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면 철이란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철이란 자연처럼 천리를 깨닫고 따르며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꾸밈없는 천진의 마음가짐과 품위를 바탕으로 한 삶이 아닐는지—.

아들의 꾸러기 소리 한 마디 속에 숨겨진 암호들을 찾아서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너울에 실려 오고, 뱃전에 부닥쳐오는 그것들을 여기에 주워 담아 보았다.

바해, 정해영